너와 나, 그렇게 예쁘게 시작해서 조용히 멀어지다
ISTP와 ISTP, 너무 달랐기에 조심스러웠던 연애의 끝
나와 너무 달랐던 그 사람에게, 어느새 든든함을 느꼈다.
함께하는 시간들이 마냥 즐거웠다.
바라는 게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.
그는 내가 몰랐던 세상의 이야기들을 꺼내주었고,
실패나 시련 앞에서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삶의 태도는
그 자체로 나에겐 배움이었다.
나는 사람을 직업이나 학벌로 동경하진 않는다.
늘 그 사람 자체의 기준과 가치관, 색깔에 반해왔다.
그도 마찬가지였다.
3년의 인연, 그리고 3개월의 가까움
우리는 3년 넘게 알고 지냈지만,
연인 관계가 된 건 2024년 여름이었다.
그 여름, 나는 잠시의 여유 속에서
그와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.
퇴사 후 백수로 지냈던 3개월의 시간이
그와의 3년 우정보다 더 깊은 친밀감을 만들어주었다.
특별한 계절이었다.
틈만 나면 심야 데이트를 했고,
오랜만에 느끼는 몽글몽글한 감정이 좋았다.
우리 나름대로 맞춰갔다고 생각했다
자연스럽게 관계의 발전을 기대했고,
서로가 너무 다르다는 걸 알기에
작은 부분들을 조금씩 양보하고 배려했다.
나는 피곤해하는 그에게
‘놀러 가자’는 말도 꺼내지 않게 되었고,
함께하는 시간에 더 집중하고자 노력했다.
그런데, 점점 외로워졌다
그는 평일엔 바빴고,
주말에도 테니스와 태닝, 여행 등
자기만의 루틴이 뚜렷한 사람이었다.
결국 나에게 주어지는 시간은
토요일 늦은 오후부터 그날 밤까지.
그러다 어느 날,
그가 8월 첫 주 주말에 제주도 여행 계획을 꺼냈을 때
문득 생각이 들었다.
‘그의 일상에 나는 과연 존재하고 있는 걸까?’
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
나는 그를 탓할 수 없었고,
그도 나를 탓할 수 없었을 것이다.
우리는 너무 달랐고,
관계를 느끼는 방식이 달랐다.
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가까워지길 바랐고,
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있는 그대로 받아주길 원했으니까.
그래서, 여기까지가 맞는 것 같았다
그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싶었지만
나는 그렇게 큰 사람이 아니었다.
그를 바꿀 수 없었고,
나를 계속 억누르기도 어려웠다.
서로의 행복을 위해,
조용히 멈춰야 할 시점이 온 것 같다.
예뻤던 사랑이었기에, 더 조용히 보내기로
그와 함께한 시간은 진심이었다.
그리고 그 진심을 부끄럽지 않게 기억하고 싶다.
조금 다른 결말이었을 뿐,
이 관계는 나에게도, 아마 그에게도
마음에 오래 남을 이야기였을 것이다.
그렇게, 우린 예쁘게 시작해서 조용히 멀어졌다.